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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 테라오 겐

・ 덕질 :: hobbies

by 덕만이형 2020. 1. 2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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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가능을 논할 수 없다.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방법이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결과는 실패로 끝날 수도 있지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열어둬야 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하기란 불가능하다.

 

가난해서 즐거운 일도 잇지만, 괴로운 일도 있다. 시시각각 머리를 쓰며 요령껏 살아야 하고, 셀 수 없는 슬픔도 공존하다.

 

진심은 많은 것을 움직이게 한다. 어떤 꿈을 꾸든, 무엇을 목표로 하든, 그건 자유다. 경험이 없으면 모르는 게 당연하다. 무지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모르는 게 있다면 알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사람의 죽음에 나는 주체할 수 없이 슬픈데 세상은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에 대해, 그때의 느낀 위화감에 대해,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곱씹어보고 나서야 겨우 알았다. 슬플 땐 마음껏 슬퍼하면 된다. 그렇다고 그 슬픔이나 괴로움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길 바라서는 안 된다. 그건 이기적인 생각이다.

 

이 세상 누구라도 가능성을 지니고 살아간다. 가능성,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하고 귀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가능성은 말 그대로 가능성일 뿐이다. 확실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우리의 인생에서 확실하게 논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죽는다는 것뿐이다. 이것만이 우리에게 약속된 미래이며 그 외에는 가능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음악의 꿈이 끝나버리고 다른 꿈을 찾아 한 발 내딛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온갖 생각과 행동이 뒤엉켜 있던 시기라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서서히'였다. 음악이 아닌 유형의 세계에서 내가 가진 창의력을 시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주 서서히 들었다. 생각해보면 곡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기계도 설계하던 '다빈치'도 있지 않은가.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가 불쑥 찾아와 퍼붓는 질문에 하나같이 귀찮은 내색을 비쳤는데, 그들이 귀찮아 하는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이 정해졌는데, 나는 그 분야에서 쓰는 용어 하나도 제대로 아는 게 없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었다.

 

어떤 빈자리에 다른 무언가를 넣어야 할 때는 아주 조금이라도 크기 차이가 있어야 한다. 물건을 만드는 세계에서는 '찰지게 딱 들어맞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때 크기 차를 계산하면 0.025밀리미터가 된다. 제작하는 사람에게 이 크기 차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도면에 '공차28'이라고 불리는 수치를 표기해야 한다.

 

나는 단순히 물건을 만들고 싶은 게 아니엇다. 디자인만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하드웨어나 기술을 이용해 내 안의 창의력을 표현하고 싶었다. 뮤지션에게 노래가 있듯이 완성한 제품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마치 록 밴드 같은 브랜드, 나는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영세한 제조회사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금형 투자'와 '자금 조달'이라는 높고 커다란 벽을 넘어야 한다. 이 벽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고, 만리장성만큼 긴 데다 베를린의 장벽보다 차갑다.

 

당시 나는 정부지원금을 끌어오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의 신청서를 작성했다. 설계와 디자인 업무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책상에 앉아 신청서를 쓰는 일상이 반복됐다. 할 수 있는 모든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몇 건은 서류심사를 통과하면서 2차 심사를 위한 프레젠테이션도 준비했다. 

 

당시 내가 만든 새로운 바람을 경험한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확실히 바람은 부드럽게 느껴진다. 기존의 선풍기와는 전혀 다른 물건이다. 하지만 네 앞에 닥친 경영 상황을 봐라. 지금 이걸 상품화하는 건 불가능하다. 사업 면에서 보면 선풍기를 만드는 회사에 이중 날개만 파는 게 맞다. 대기업과 계약해서 날개만 제공하고, 라이선스 비용을 받는 게 좋지 않겠느냐.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록 밴드가 기적의 명곡을 써다고 치자. 그걸 다른 밴드에게 팔 수 있을까? 음악의 세계에 비유해보자면, 대형 기획사 아이돌 그룹에게 곡을 파는 것과 같은 거다. 내가 아는 한 록 스타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써 내려간 영혼이 담긴 곡은 직접 노래하고 연중해야 진정한 뮤지션으로 인정받는 거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큰 소리를 치는 나에게 그들은 파산을 코앞에 두고 아집을 부린다고 생각햇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아집이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지난 이십 년 동안 변치 않고 추구해왔던 것은 나와 사회의 접점이다. 나는 그 접점이 내 손에 있는 선풍기 날개가 죄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사회로 나갈 문을 열어줄 거라고 확신했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고집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가는 의미였다.

그런데 이걸 팔아버린다면,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에게는 절대 팔아서는 안 될 무언가가 하나쯤은 있는 법이다.

 

꿈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지만, 꿈을 꾼 사람이 느끼는 만큼 다른 사람이 느낄 수는 없다. 나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꿈을 꿨다. 그 꿈을 위해 성말 많은 경험을 햇다. 그리고 그동안의 경험에서 미루어봤을 때, 이번 꿈은 틀림없는 진짜다. 내가 가진 거라고는 꿈뿐이었다. 탈탈 털어도 나올 건 그것밖에 없다.

 

그린팬을 출시하고 칠 년이 나자 매출이 백 배 가까이 불어난 셈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탈하게 성공가도를 밟아온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순조로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언제나 거친 바다 위에 있었고, 파산 직전보다 더 힘든 시기도 있었다. 그 정도의 위기는 몇 번이고 나를 다시 찾아왔다. 회사 규모가 커진 만큼 타격도 컸다.

위기 속에서 가까스로 견디는 상황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회사를 살린 건 세상을 놀라게 한 단 하나의 제품이었다. 집에서 맛있는 토스트를 먹고 싶다는 생각에 개발한 '발뮤다 더 토스터'. 이 제품은 그린팬을 크게 뛰어넘는 대히트 상품이 됐다. 솔직히 이게 나오지 않았다면 발뮤다는 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반년에 한 번씩은 꼭 일어났다. 바다는 오늘도 폭풍우가 심하다.

안주 혹은 안정. 매력적인 말이지만, 그런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힘겨워도, 다시 일해야 하는 게 인생이다.

 

록스타들의 노래는 어딘지 모르는 길목이나 고독한 사람들의 방,달리는 자동차 라디오 등 세상 곳곳에서 울려 퍼지며 누군가의 기분을 바꾸기도 하고,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도 그런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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