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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오베라는 남자 - 프레드릭 베크만

・ 덕질 :: hobbies

by 덕만이형 2018. 6. 2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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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소설을 읽었다.

나는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하나만 들자면 소설은 다분히 주관적으로 해석되는 경향으로 타인과의 대화에서 공감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 속물같지만 나는 '잘난척'하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 짧은 대화라도 사용하는 어휘와 인용구 등이 그 사람의 첫인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잘 생긴 얼굴이 최고다. 그 잘생김을 갖지 못한 나같은 남자는 뇌라도 섹시해야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상식과 지식의 조각들을 수집한다.



'오베라는 남자'는 스웨덴 작가의 소설이다. 블로그에 썼던 이야기가 독자들의 권유로 인해 책으로 출판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몇 년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나는 책으로.. 아내는 영화로 봤다. 

그리고 저녁에 술을 한잔하며 오베와 그의 아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좋은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하게 되어 즐겁고 행복했다. 








'오베'는 고집불통에 매사에 불만으로 가득찬 영감이다.

그가 처음부터 그랬던건 아니었다. 말 수가 적었지만 어릴적부터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지만 철도회사를 다니던 아버지는 그의 삶에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과묵하지만 남의 허물을 얘기하거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절거리는 것을 경계하도록 가르쳤다.


오베는 잡담에 끼어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런 경향이 최소한 오늘날에는 심각한 성격적 결함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영감탱이 아무나와 무슨 주제로든 수다를 떨 수 있어야 했다. 순전히 그게 '사근사근한' 태도라는 이유만으로. 어쩌면 오베 세대의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가치 없어 보이는 일들을 한다고 떠들어대는 세상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보험회사 직원에게 사기를 당하고, 도시 재개발로 인해 집을 철거 할 것을 강요받고, 

공사장에서 일하며 배운 기술로 집을 수리 하자 옆집의 화재로 인해 전소되고. 

선천적인 심장질환으로 그토록 원하던 군복무에서 탈락하며 오베는 신을 원망하고

그의 까칠함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 였다.

그런 그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사랑이 찾아온다.





아내의 친구들은 그녀가 자발적으로 매일 아침 눈을 뜬 뒤 어베와 함께 하루를 공유하기로 결정한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베가 그녀에게 책장을 만들어주면 그녀는 페이지마다 작가의 생각으로 가득 찬 책들을 거기에 꽂았다. 오베는 자기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들만 이해했다. 시멘트와 콘크리트, 유리와 강철, 공구들, 가늠할 수 있는 물건들. 그는 올바른 각도와 분명한 사용 설명서를 이해했다. 조립 모델과 도면, 종이에 그릴 수 있는 것들.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아내 소냐가 6개월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베에게는 그녀를 따라가겠다고 약속했다. 




누군가를 잃게 되면 정말 별난 것들이 그리워진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

미소, 잘 때 돌아눕는 방식, 심지어는 방을 새로 칠하는 것까지도..




오베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아내 소냐를 만나러 가려고 한다. 하지만 준비없이 무책임하게 자살을 하는 건 오베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집에 나무 테이블에 기름을 칠하고 바닥에 상처난 부분을 수리한다. 그가 떠나고 난 뒤 많은 사람들.. 특히 지랄맞은 부동산 업자들이 그의 집을 드나들며 바닥에 상처를 낼 것이 분명하기에 비닐을 깔았다. 

전화를 끊고 장의사를 예약하고 유언장에는 자동차의 겨울용 타이어가 어디에 있는지 마저 적어두었다.

목을 맬 밧줄을 걸 고리는 자로 재어 정확히 중간 지점에 표시를 한 후 드릴로 구멍을 뚫었다.

아내 소냐가 멋지다고 했던 양복을 꺼내 입고 구두도 신었다.




오베는 누가 차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무시했다. 바지의 주름진 부분을 폈다. 백미러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았다. 넥타이를 매야했는지 걱정됐다. 그녀는 항상 그가 넥타이를 매는 걸 좋아했다. 그럴 때는 그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인 양 바라보았다. 그녀가 지금도 자기를 그렇게 볼지 궁금했다. 저세상에서 만났을 때 실업자에다가 더러운 양복을 입었다고 그녀가 자기를 부끄러워하면 어쩌나. 컴퓨터 때문에 자기가 갖고 있던 지식이 변변찮은 것으로 판명 나는 바람에 천천히 물러나지도 못한, 자기 직업을 유지 못한 머저리라고 생각할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자기를 의지할 수 있는 남자로 봐줄까? 책임감을 갖고 일하고, 필요하다면 온수기도 고칠 수 있는 남자로. 이 세상에서 아무 쓸모없는 노인네에 불과한데도 자기를 똑같이 좋아해줄까?



(스포일러가 되므로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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